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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후의 문화 감상/만화

웹툰 단행본화 안하면 안되겠니?

최근 네이버에 연재가 시작 된 '바람의 색'을 보면서 계속 뭔가 위화감을 느껴왔다. 분명 좋은 작품인데도 보는 내내 이상한 느낌이었다. 이상했는데 오늘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바람의 색은 웹툰으로 출발한 작품이 아니라 일본 잡지 지면에 연재되는 작품 이었고, 그걸 웹툰 형식으로 수정한 거였다.

 

몇 년 전부터 한국 웹 포탈 등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웹툰은 특유의 '스크롤링'형식을 이용해 많은 새로운 시도를 해 왔고 성공해왔다.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연출은, 강풀의 26년 중 총알이 날아가는 장면을 스크롤링하는 내내 시선이 따라가는 굉장히 긴 컷이다. 아마 그 컷 전에는 스크롤링을 이용한 연출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그 뒤의 웹툰들은 특유의 스크롤, 휠을 '돌려서' 만화를 읽는다는 새로운 매체의 판형을 잘 받아들이고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조금 이야기를 돌려서, 웹툰이 어느정도 흥하다 보면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단행본이 출간된다. 추측컨대, 무료인 웹툰의 연재만으로는 수익이 불분명할테고, 지속적인 수입을 기대할 수 있는, 완결 후에도 수입을 기대할 수 있는 단행본에 많이들 혹하는게 아닌가 싶다. 물론 창작자로서 자신의 작품을 종이로 출간하고 싶다는 욕망도 절대로 무시할 것은 못되리라.

 

그런데 단행본? 사 본 적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려나. 만화를 꾸준히 사보는 나도 전체 책장의 고작 한 줄 정도가 웹툰 단행본이다. 솔직히 돈이 아깝다. 무료로 본 만화를 다시 사서 돈이 아까운게 아니다. 컷 분할이 개똥같다. 이건 정말 책으로 읽으라고 나온 만화가 절대로 아니다. 도무지 시선의 흐름을 못 찾겠다. 작품의 맥이 툭툭 끊긴다. 화가 난다.

 

현재 웹 연재하는 작가 중에 지면 연재나 출간 경험이 되는 작가가 대체 얼마나 될까? 당장 생각나는 사람을 꼽아도 중견 작가급인 허영만, 강도하, 이충호, 원수연, 김태호, 강경옥, 천계영(그 외...) 정도 뿐이다. 그마저도 일부는 아예 지면 연재 형식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다음 웹툰 '브레이커' 는 그냥 일본 잡지 연재분을 그대로 올린다. 이런 작가들의 작품조차 단행본이 되면... 슬퍼지는 경우가 많다. 김태호 작가의 '미생'의 경우 웹 연재부터 컷분할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는 듯 하고 단행본에서는 컷 위치를 다시 정리해서 나온다. 지금까지 본 웹툰 단행본 중에는 가장 나았지만 그래도 읽는 내내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구매한 웹툰 단행본 중에 만족감을 느낀 물건들은... 전부 4컷 만화 들이었다.

 

그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웹툰은 대부분 상당한 고해상도에다가 컬러 연재인데 단행본으로 내면 이 장점이 거의 다 죽어버린다. 고해상도 이미지는 인쇄하면서 뭉게지거나 축소되어 박력이 줄어들고 컬러는 색감 지정을 조금만 잘 못해도 이게 과연 같은 작품인지 의심케 할 정도다. 최근 구매한 '달콤한 인생'의 경우 웹 연재분과 출판분의 색감이 너무 심하게 달라서 읽다가 짜증이 났다.

 

아까의 이야기와 연결하자면 결국 스크롤링과 지면 연재 형식의 공유는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억지로 다들 단행본만을 붙잡고 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왜 자꾸 안되는 데에만 매달리나? 어차피 만화 출판시장은 죽었다. 이건 화타나 편작이 와도 살릴 수가 없다. 왜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를 자꾸 시도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기껏 웹툰이라는 새로운 개척지를 얻었는데 이미 황무지가 되어버린 땅에 돌아가 자꾸만 씨를 뿌리는거지? 말라 죽기밖에 더 하나. 물론 나도 한국 만화 시장이 이렇게 된 데에 대한 슬픔에 공감을 하고, 독자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웹툰과 연재 만화는 전혀 다르다. 다른 종을 접붙이기 시도하는건 바보짓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 중 하나가 웹툰 작가가 연재시 받는 고료 외에 다른 수입이 없다는 부분에도 있었을텐데, 이 부분에 대해 들은 최근 소식이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 다. 다음과 네이버는 얼마 전 부터 완결 웹툰에 대해 유료로 감상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행했다. 그리고 주호민 작가는 완결 후 유료 구독 수입으로 수천만원을 벌었다는 카더라가 있었다. 액수가 얼마가 되었거나 저런 소식이 돈다는건 수입이 발생했다는 거고, 내가 생각하기엔 억지로 단행본 내서 받을 끽해야 초판 3천부도 안팔릴 한국 시장에서 절대로 의미 없는 인세수입이나 혹은 매절 수입보다는 나을 것 같다. 물론 내가 만화나 출판 담당자가 아니라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게 낫지 않나?

 

만화를 사랑하는 독자의 한 사람의 입장에서 한국 만화가 흥해서 오래오래 좋은 작품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웹툰과 단행본은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이기에 최근의 새로운 시도들이 반갑다. 웹툰이 올바른 방향으로 제 길을 찾아서 나아가는 날은 언제쯤 올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