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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후의 문화 감상/만화

젠: 마경무인학원 - 미묘하지만 좋은 시도.


(이미지 출처: yes24)

(2010. 12. 10 3권 구매, 12. 11 감상)

무협이라는 이야기는 참으로 매력적이다. 김용의 소설들 이후로 우리나라에는 소위 무협지라고 불리는 작품들부터 최근의 신무협, 양판소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쓰이고 있는 단골 장르로 자리잡았다. 비슷비슷한 소재지만 주제와 표현 방식으로 조금씩 바꾸어서 계속해서 살아남은 장르인 무협, 이를 만화적 표현으로 옮기려는 시도는 계속 되어왔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무협 만화는 국내 기준으로 열혈강호 하나. 그 외엔 전부 엎어졌다. 최근 급히 완결된 베리타스도 너무 아쉬웠고. 무협과 만화를 접목하려는 시도는 많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물론 한국의 좋지 않은 만화 시장의 탓도 있지만 사실 장르를 초월하는 표현의 어려움이 크다고 본다.

무협소설을 보면, 내공 심법 한번 익히는데 혈 이름이 수십개가 나온다. 무공 초식을 펼칠때 주인공이 움직이는 모습도 정말 복잡하다. 전적으로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기 때문에 그런 어려운 표현이 가능해진다. 그렇지만 만화로 옮기게 되면 그런 어려운 내용들을 그림 한 컷으로 집약해 표현해야 한다. 연속 동작을 표현하려고 하면 더욱 난감해진다. 정지 화면인 만화의 특성상 무협은 정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장르 중의 하나인 것이다.

동작 뿐만 아니라 내공이나 초식, 문파등의 문제도 상당히 복잡해진다. 무협 소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내공을 익히는데 책 한권이 소모되고 초식을 익히는데 책 두권이 지난다. 사실 무협 소설을 읽는 타겟층은 지속적으로 같은 장르를 소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려운 용어에 대한 세세한 설명이 없어도 대강 이야기 해주면 알아듣는다. 그렇지만 만화의 타겟은 무협소설보다 훨씬 그 폭이 넓다. 세세한 설명을 도입하면 만화가 갖는 간결한 표현의 강점이 사라지고, 대강 설명하면 초보 독자들을 배려할 수 없다.

젠은 이러한 문제들을 상당히 단순화 시키고 정리를 했다. 내공이라는 부분을 그냥 '젠' 이라는 용어를 도입해 복잡한 설명을 모두 생략했고, 내공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쓰면서 올 수 있는 무협 매니아들의 비평적 눈길이나 초보 독자들의 거리감을 줄이는 시도를 했다. 초식이라는 부분 또한 그렇다. 복잡한 설명 없이 그냥 단순, 간략화 시켜 표현하고 있다. 이 부분도 무협이라는 장르의 신규 독자와 기존 독자 사이에서 타협을 한 결과물 일 텐데 조금 심심한 감이 없잖아 있다.

복잡한 무협의 개념을 간략화 시킨 덕분에 더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듯도 하지만, 무협 만화의 주 독자층은 역시 무협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어느정도 지식을 이미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결국 무협을 모르는 독자도, 무협을 아는 독자도 만족시키기 어려워 질 수가 있다는 점이다.

젠이라는 만화는 꽤나 참신한 진행을 보이고 있다. 문파를 기업화 시켜 표현하고, 젊은이들의 모임을 무림맹이 아닌 학교에서 구현하고 있다. 또한 서양의 무술 개념을 도입해 동서간의 무술 대결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무협소설의 구파일방으로 대표되는 복잡한 세력 구도를 깨고 양대 문파 구도, 또 다시 동서간의 양대 구도로 간략화 시킨 부분은 초보 독자들이 관심을 갖기에 적절하지 않은가 싶다.

무협 소설을 잔뜩 쌓아놓고 읽어본 사람들에게는 약간 설명이 부족하고 단순한 느낌이 들 수 있지만 그래도 꽤나 호쾌한 진행과 동서간의 대결구도로 흥미를 가질 수 있을테고, 초보 독자들 또한 어려워서 접근하지 못했던 무협 세계에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는 발판으로 쓰기에 적합한 작품으로 보인다.

국산 만화이기도 하니, 왠만하면 사서 봅시다. 커피 한잔 덜 마시면 만화책 한 권 살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