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시트콤이라기 보다는 시트콤이라는 형식을 빌린 일일 드라마라는 느낌이다. 한 화에 한 에피소드가 완결되는 형식만이 시트콤을 지칭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간 봐 온 시트콤은 거의 웃음이 주 였으니까. 근데 시추에이션 코미디, 코미디다. 웃겨야하는데 이건 웃기지가 않다. 블랙코미디라도 쓴 웃음은 짓게 만드는데?
1회부터 웃음기는 싹 빼고 불쌍한 두 시골 소녀의 당황스러운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그 가족이 산 밖으로 뛰쳐나오는 계기도 눈쌀을 찌뿌리게 한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거침없이...를 워낙 재미있게 본 터라 계속 믿고 보기로 했지만, 그 소녀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얼핏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비현실 적인 부분이 많이 보인다. 과하게 친절한 사람, 그것도 외국인을 만난다던가.
김병욱 PD의 작품을 내가 본건 세번째 인데, 모두 평범한 집이라기보다는 중산층 이상의 집이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병원, 순풍 산부인과에서도 병원. 개인 병원을 소유하거나 개인 사업을 굴리면서 단독 주택에 살 정도면 꽤 사는거지. 기사도 두고.(지금 찾아보니 웬만해선...은 평범한 가정이다.)사실 그래서 잘 공감이 가지 않을 법도 하지만, 인물의 특징이 매우 잘 살아있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도 인물 하나하나에 개성을 부여하고 그 인물들이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사실 인물 구성이나 상황 설정은 거침없이 와 지붕뚫고가 꽤 비슷해보인다. 경제권과 권위를 가진 가장 할아버지, 멍청한 아버지, 무서운 어머니, 반항하는 아들, 혼자서 잘 사는 특이한 삼촌. 특히 준혁이는 왠지 모르게 외모까지 윤호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건 나뿐만이 아닌 듯 싶고.
사실 내가 이런 글을 쓰게 된건 떼쟁이 막내 딸이 참 연기를 잘해서인지 공감이 가서 였다. 다른 인물들에는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은데 버릇없는 해리를 연기하는 그 꼬맹이를 보면 어떻게 그렇게 요즘 초등학생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너무 바쁘고 오빠도 신경 써주지 않는다. 가족에게 따돌림 받다시피 하는 아이는 사랑을 받지 못하고 식모살이로 얹혀사는 두 자매의 우애를 계속해서 질투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찡해왔다. 아, 요즘 버릇없는 초등학생들은 사랑을 못받고 자라서 저렇게 버릇이 없구나. 처음에는 짜증이 나기도 할 정도의 캐릭터였는데 그 뒤로는 불쌍해 보이기 시작했다.
김병욱PD는 이런 비현실속에 현실을 녹여내는 능력이 정말로 뛰어난 것 같다. 누가 단독주택에 사는 잘 사는 부잣집에서 우리 현실을 떠올릴 수 있을까? 그렇지만 그 인물들을 보면 우리 주변의 누군가 혹은 우리 가족이 떠오른다.
이 시트콤에서 거슬리는건 아이러니하게도 웃음소리다. 시트콤의 웃음소리는 시청자를 따라웃게 만들거나 분위기를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지붕뚫고... 에서는 꽤 심각한 상황에서도 웃음소리가 자주 터진다. 예를 들어 해리가 버릇없는 짓을 할때도 웃음이 터진다. 난 정말 저 부분이 왜 웃긴지 모르겠고 불쌍하기만 한데.
재미있게 보고 있기는 하지만 자꾸만 나는 이게 시추에이션 코미디가 아니라 일일 드라마라는 생각이 든다. 왜일까. 그게 김병욱 PD의 연출 의도일까? 어째서 코미디에 자꾸만 무거운 밑밥을 깔아서 극 전체의 분위기를 다운 시키는 걸까.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일상에서 터지는 자연스러운 웃음 요소에 가끔씩 들어가는 황당한 설정, 그리고 하루하루 종결되지만 처음부터 끝을 관통하는 큰 흐름의 이야기 같은것들이 참 좋았는데 이번 작품의 의도는 잘 모르겠다.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