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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직딩여행기

오덕직딩여행기 1편 : 삿포로에 가다 - 그 1일.


 때는 바야흐로 2011년 9월 13일.

추석 내내 업무에 쩔던 나는 일단 손자 된 인간의 도리를 다해야겠다는 생각에 퇴근하자 마자 외가로 향했고 13시간 정도 떡실신을 한 뒤 눈을 뜰까말까 30분쯤 바닥을 구르고 있을 때 였다. 그때 마침 휴대폰에 문자가 들어왔고 잠이 확 깼다.

 '너님 15일 연차 쓰세요'

오오... 그럼 3일 연휴가 아닌가! 이 황금같은 연휴를 버릴 순 없지. 허겁지겁 점심을 먹고 3시간여에 걸쳐 집으로 돌아와 급히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근데 어디로 갈 것인가? 3일 가지고 동남아는 택도 없다. 중국은 비자가 없다. 그럼 일본밖에 없는데 가려고 했던 나고야는 자리가 없다. 갈 수 있는 곳은 나리타 밖에 없더라. 아 지겨운 나리타. 가도 할 것도 없는데 또 가긴 싫다. 그러다 내 눈에 들어온 곳! 그 곳은 바로 삿포로.

- 공항 버스 타고 인천으로 가다가...

비행기 출발 3시간전 (-_-) 티켓 구매를 완료하고 부랴부랴 공항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부탁한 면세 화장품을 폭풍처럼 사고 게이트로 달리는데 아뿔싸! 여기가 아니네 (...) 폭풍 같은 질주 끝에 간신히 마감 직전의 탑승구로 간신히 들어갈 수 있었다. 

앉고보니 뭔가 위화감이 든다. 아놔. AVOD가 없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타기 직전에 무려 정가를 다 주고 산 가이드 북을 꺼내들었다. 북해도 가이드북 짱 커! 오오... 근데 삿포로는 짱 얇아!......................................이런. 그래도 기내식은 따뜻한 물건이다. 일본 노선 타고 이런 기내식 먹긴 처음. 아마 비행시간이 가장 긴 편에 속해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북해도는 더럽게 컸고 관광지도 더럽게 멀리 분산되어 있었다. 내 첫날 밤 도착 후 셋째날 낮에 귀국이라는 변태같은 스케줄로는 갈 수 있는 곳이 상당히 한정되는 상황. 어쩔 수 없이 삿포로-오타루만 돌아보기로 정하고 대략 코스를 생각한 다음 삿포로에 내렸다.

짐이라곤 꼴랑 배낭 하나에 든 거라곤 티셔츠 네 장, 바지 하나, 양말 세 켤레, 속옷 세장. 끝. 폭풍처럼 비지니스 승객마저도 추월하면서 입국 심사를 완빵에 통과하고 나니... 나는 누군가 여긴 어딘가? 내 갈 곳은 어디인가?

그래 내가 숙소를 예약 안하고 왔구나......-_- 다행히 친절한 인포메이션 누님이 입국장 바로 앞에 계시길래 

'아...저... 치토세 근처 제일 싼 호텔 정보좀 알고 싶은데요 캡슐같은데'

'치토세 근처에는 캡슐이 없습니다 고갱님'

'헐퀴 ㄴㄴ 삿포로 삿포로염'

하니 꺼내주신 황금같은 리스트! 를 올리려고 했는데 귀국해서 찾아보니 없네...



-내가 미쳤지. 그냥 천엔짜리 사면 되는걸 뭣도 모르고 지정석으로 끊어서 무려 400엔이나 더 주고 탐 ㅠㅠ 첫날이라 체력도 남아 돌았는데.


어쨌거나. 오랜만에 마셔본 오후의 홍차 밀크티는 역시 좋았다.

아래부터는 무려 밤 11시가 넘어 도착한 삿포로역부터 스스키노까지의 여정과 나의 삽질.


 


-닛카! 닛카 위스키라면 그 유명한 거북이 등 모양의 병 위스키인가!(틀림)

숙소도 없이 삿포로의 밤거리를 헤매던 나는 일단 일본에 왔으니 뭐라도 처먹자는 정신으로 가이드북에 실린 가장 유명하다는 삿포로 미소라멘 '게야키' 로 향했다. 당시 시간이 밤 11시 30분에 가까웠음에도 줄이 쩔었음...다 일본인...! 오오 한국인이 없다니 그렇다면 이곳은 진정한 현지 맛집인가 하면서 두근두근 하고 도둑 와이파이를 잡아 페북질을 하면서 50엔 토핑 무료 쿠폰까지 받고 파를 추가 한다음 호기롭게 맥주까지 시켰는데....? 


-게야키 미소라멘 + 파(네기) 추가 토핑.

맛 없 다......................

거기다 당연히 나마비루 라고 생각하고 누지른 맥주 식권은 무려 캔맥주. 나는 캔맥주를 무려 450엔이나 주고 사 마셨다 (젠장) 일본 라멘은 다 맛있다고 생각하던 내 고정관념이 산산히 깨지는 순간과 함께 이 여행에 드리운 암운을 이때까지 나는 몰랐다. 3일에 걸친 삿포로 구루메 여행이 다 똥망일 거라곤 생각도 못 했지. Aㅏ.

여튼 라멘을 다 처먹고 공항 인포메이션 누나한테 받은 캡슐 호텔 리스트 중 가장 싼 곳으로 갔다. 1박에 2900엔. 무려 대욕탕과 (나름대로) 노천 욕탕도 있었다. 근데 옆 칸 아저씨가 코골이 쩔어서 새벽 3시까지 못잔건 개 망. 그렇게 1일차가 허무하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