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정말 화가 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아이들에게 연민이 든다.
내가 저 아이들과 비슷했던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나는 VT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별 짓 다했다. 맞춤법 파괴, 물건 구걸, 떼쓰기, 욕하기, 불법자료 당당히 요구하기...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별 생각없이 하이텔 서비스가 종료한다길래 내 이름으로 검색해본 후 나는 배를잡고 5분가량을 방바닥에서 굴렀고 또한 한없는 쪽팔림을 느꼈다.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구나...
당시 채팅방에 접속하면 보통 나이를 밝히는 일이 많았다. 보통 20대가 많았고 여성분들도 꽤 있었다. 거기서 내가 12살이라고 밝히면 아무도 믿지 않았다. 당시에는 다들 통신어체를 재미삼아 사용했으니까. 그래도 곧 나의 어린 말투를 알아채고 초등학생이 어떻게 이런 곳에 접속했냐며 놀라고들 했다.
나는 90%의 어른들 속에 들어간 10%의 어린이였다. 그래서 나는 귀여움을 받으면서 어른들에게 통신 문화에 대해 때론 혼나기도 하고 때론 칭찬받으며 천천히 흡수해나갈 수 있었고 지금은 나름대로 매너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살고있다. 벌써 10년전의 일이다.
요즘 초등학생들 보면 무개념에 화가 난다. 그런데 천천히 내 초딩 사촌동생들을 보고 있으면 연민이 든다. 부모들은 어떻게든 자기 자식새끼들을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게 하려고 맞벌이를 한다. 아이들은 학원 뺑뺑이를 돌다가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없다. 결국 인터넷에 접속하거나 게임방으로 간다. 인터넷이나 게임방에는 예전처럼 90%의 어른과 10%의 어린이들의 비율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소위 어른들은 20~30대이고 그마저도 먹고살기 바빠 대부분 중,고등학생들이다. 그리고 일부의 어른도 모두 예전처럼 무언가를 가르칠 수 있는 입장이 아닌 사람도 많다. 어린녀석일줄 알고 잡아간 악플러들이 어린녀석인 거 봤나?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순진했던 초등학생들은 자극적인 것들만 물먹듯이 흡수해서 소위 말하는 '초딩' 이 되어간다.
나도 어린시절 친구들이 욕을 쓰면 빨리 배우고 싶어했고 주변에는 곧 그 욕이 빨리 퍼졌다. 나쁜건 더 빨리배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고 나쁜말, 나쁜일을 하면 어른이 된 줄 안다. 또래들의 모임에서 누군가 한 아이가 물들어오면 급속도로 번진다. 결국 대부분이 똑같이 물들어버린다.
물론 어린아이들의 행동에 분노가 치밀어오르는건 사실이다. 나도 정말 황당한 일을 많이 당해봤다. 하지만 분노와 동시에 나는 슬픈 감정이 든다. 무엇이 천진난만하게 친구들과 술래잡기하며 뛰놀아야 할 어린이들을 모니터 앞으로 내모는걸까?